책소개
말투스 가족 이야기다. 말투스는 계몽주의를 숭배하며 인종주의와 폭력에 반대하는 학자다. 극이 진행되면서 평범한 듯 보이던 말투스 가족이 안고 있는 문제가 구체화한다. 리트비아인 아내 릴은 큰아이가 장애아인 현실 때문에 힘들어하고, 아들 옌스는 스킨헤드가 되어 사사건건 말투스와 충돌한다. 급기야 옌스가 흑인 남자를 칼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터지고, 말투스는 판사 앞에서 아들을 변호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특정한 사건이나 줄거리 없이 독립된 13개 장면으로 구되어 있으며, 극은 대체로 말투스 집이라는 사실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진행되지만 흑인 남자와 흑인 어머니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비현실적이고 이질적이다. 사실과 환상을 결합하는 독특한 표현 형식으로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당장 개선해야 할 과제인 동시에 악몽 속 한 장면인 것처럼 보여 준다.
200자평
탕크레트 도르스트는 독일 문학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 앞서 <나, 포이어바흐>가 번역되었고, <커브>가 공연되기도 했지만 당시에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검은 윤곽>은 주제를 독특한 형식으로 표현해 온 작가의 특징이 잘 반영된 대표작으로, 현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를 표면화함으로써 시대 인식을 역사적 성찰로 이끌어 간다.
지은이
탕크레트 도르스트는 1925년 기계공장을 소유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1943년, 고등학교 시절에 나치노동봉사에 소집, 1944년 군에 징집되었다가 영국과 미국 포로수용소 생활을 경험한다. 1947년 말에 서독으로 석방된 뒤 뮌헨대학에서 독문학과 연극학을 전공했다. 1960년에 발표한 <커브>가 뤼베크에서 초연해 성공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독일 현대연극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아동극, 방송극, 시나리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재까지 활발히 작품 활동 중이다.
옮긴이
정민영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독문학박사)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현대독일문학을 수학했다. 2013년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교수다. 2002년부터 여러 연극인들과 희곡낭독공연회를 결성해 번역과 낭독 공연을 통해 여러 나라의 동시대 희곡을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 ≪카바레. 자유와 웃음의 공연예술≫, ≪하이너 뮐러 극작론≫, ≪하이너 뮐러의 연극세계≫(공저), ≪하이너 뮐러 연구≫(공저) 등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 ≪뮐러 산문선≫, ≪하이너 뮐러 평전≫, 카를 발렌틴 선집 ≪변두리 극장≫, 탕크레트 도르스트의 ≪검은 윤곽≫,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욕망≫, 욘 포세 희곡집 ≪가을날의 꿈≫, 욘 포세의 ≪이름/기타맨≫, 우르스 비드머의 ≪정상의 개들≫, 볼프강 바우어의 ≪찬란한 오후≫, 독일어 번역인 정진규 시선집 ≪Tanz der Worte(말씀의 춤)≫ 등이 있다. 그 밖에 <독일어권 카바레 연구 1, 2>, <전략적 표현 기법으로서의 추>, <예술로서의 대중오락−카를 발렌틴의 희극성>, <하이너 뮐러의 산문>, <한국 무대의 하이너 뮐러>, <Zur Rezeption der DDR-Literatur in Südkorea> 등 많은 논문을 썼다. 주요 드라마투르기 작품으로 손정우가 연출한 <그림쓰기>, 백은아가 연출한 <찬란한 오후>, <보이첵-마리를 죽인 남자>, 송선호가 연출한 <가을날의 꿈>, 홀거 테슈케가 연출한 <서푼짜리 오페라>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1. 내가 아님
2. 인류 문화에 나타난 조화와 폭력
3. 질문 제기
4. 옌스
5. 차라리 바보가 되겠다
6. 옌스
7. 오!
8. 선 너머로
9. 흑인 어머니들
10. 옌스
11. 도대체 무슨 생각이 난 거요
12. 옌스
13. 검둥이 하나, 검둥이 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5~6쪽
도대체 주변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온 세상이 비명으로 가득 차 있다. 벽은 울부짖는 소리를 귀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을 만큼 여전히 굳건하지만, 누군가 창문을 열어젖히면 그 소리가 밀려들어 온다. 누군가 텔레비전을 켜면 그 소리는 안락의자에 편안히 앉아 있는 가족을 덮친다. 밖에 나갈 때, 혹 우연이라도 워크맨 이어폰을 귀에 꽂지 않았다면 양손으로 귀를 막아야 한다. 마치 혼란스러운 도망길에 오른 듯, 도처에서 양손으로 귀를 막고 뒤섞여 뛰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총격으로 바닥에 쓰러지지만 아무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 지붕 위에는 저격수들이 서서 행인을 겨눈다. 그들은 몸을 숨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맑은 하늘 아래 그들의 윤곽이 너무도 분명하게 보인다. 그들은 마치 검은 천사처럼 저 위에 서 있다. (중략)
수많은 사람들이 말을 하지만, 어느 누구도, 도시가 폐허가 되고, 교각이 부러지고, 백 층짜리 건물이 무너지며, 갈가리 찢기고 조각난 사람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과 함께 석회 구덩이로 쓸려 들어가는 원인이 사실은 끊임없이 커지는 살인 욕구, 이루어진 모든 것을 다시 파괴하려는 열화 같은 욕망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음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공포와 폭력 행위의 소리들을 점차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분명히, 아주 가까이서, 때로는 아주 멀리서부터, 마치 메아리처럼, 아니면 서서히 나타나는 끔찍한 사건의 시작처럼.